바보엄마 고슴도치
 
지은이 : 최문정 (지은이), 지연리 (그림)
출판사 : 창해
출판일 : 2024년 05월




  • 엄마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감동적인 동화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어요.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책입니다.


    바보엄마 고슴도치


    특별한 고슴도치, 아리

    아주 오래전 깊은 숲속에 아리라는 이름의 고슴도치가 살았습니다. 아리는 뾰족한 코와 커다란 눈망울이 아주 예쁜 고슴도치였지요.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느티나무 밑 웅덩이가 아리의 집입니다. 그리고 웅덩이에 빠진 밤송이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아리입니다.


    아리는 지금 몸을 잔뜩 웅크리고 겨울잠을 자고 있습니다. 갈색과 흰색의 가시들이 바람에 날리며 햇빛에 반짝입니다.


    잠든 아리의 얼굴은 눈물 자국으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은 하얗게 얼어붙어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지난겨울 첫눈이 오는 날, 아리는 엄마에게 떠나지 말라고 조르면서 엉엉 울었지요.


    아리는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떠나지 말라고 매달렸지만 엄마는 끝내 아리를 혼자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우리 고슴도치들은 가족과 함께 살지 않는단다. 아가야.”


    “왜요? 왜 함께 살면 안 되나요?”


    “가까워지면 질수록 서로의 가시에 상처 입고 아파하기 쉬우니까. 그래서 고슴도치는 언제나 혼자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남겨지는 것을 좋아해야만 하지.”


    “하지만 전 혼자 있는 게 싫어요!”


    “너도 크면 깨닫게 될 거야. 상처 입고 피 흘리는 것보다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덜 고통스럽단다.”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가족은 그 어디에도 없단다. 모두 언젠가는 헤어져야만 하는 순간을 맞게 되지. 우리에게는 그 순간이 조금 빠른 것뿐이야.”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다행히 우리에게는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잖니. 갑작스러운 사건이나 사고로 한순간에 이별해야만 하는 경우는 정말 끔찍하거든.”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데도 왜 이별을 준비해야 하나요?”


    “헤어질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자 축복이란다. 그러니 그 시간만으로도 감사하자.”


    “저는 전혀 고맙지 않아요.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인생이란 원래 이유를 알 수 없는 것투성이란다.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그러니 우리가 같이 있는 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함께 지내는 지금 이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자꾸나.”


    하지만 아리는 여전히 이별은 싫었습니다. 왜 혼자 살아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봄꽃과 함께 찾아온 친구

    “가까이 오지 마!”


    코코는 뒷걸음질 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다친 건 모두 다 저 고슴도치 때문이야.”


    코코는 아무 잘못도 없는 아리를 손가락질하며 말했습니다. 아리는 억울했습니다. 겨울잠을 자는 자신의 등 위로 넘어진 건 코코니까요.


    “너희도 고슴도치랑 놀지 마. 가시에 찔릴 수도 있어.”


    코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숲속 친구들이 아리에게서 뒷걸음질 쳤습니다.


    숲속 친구들이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리만 혼자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훌쩍훌쩍 눈물을 참으려고 해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엄마, 엄마, 흐어엉.”


    엉엉 울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지난겨울 첫눈 오던 날, 먼 곳으로 떠났으니까요.


    봄꽃이 가득한 벌판에 햇살이 내려앉았습니다.


    아리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습니다. 어둠에만 익숙했던 눈이 햇빛에 따가웠습니다. 그래도 함께 놀 수 있다면 눈이 아픈 것쯤은 참을 수 있었습니다. 아리는 여기저기 친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람쥐 피누가 지난가을 느티나무 밑에 묻어둔 도토리를 캐고 있습니다. 통통한 볼살이 귀여운 피누와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나랑 친구가 되지 않을래?”


    아리는 피누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하지만 피누는 못 들은 척 도토리를 입에 물고 나무를 올라갔습니다.


    “이리 내려와서 나랑 같이 놀자. 우리 친구 하자.”


    아리는 피누에게 졸랐습니다.


    “싫어. 네 가시에 찔릴까 봐 무서워. 난 지금 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거든.”


    그러고 보니 피누의 배가 볼록했지요.


    “난 아무나 찌르지 않아. 그러니까 친구가 되자.”


    하지만 피누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네가 아무리 찌르지 않으려 해도 네 옆에 있으면 가시에 찔려 상처 입게 될 거야. 그래서 난 너와 친구가 될 수 없어.”


    “난 다람쥐 피누가 헛소문을 퍼뜨린다고 야단쳤는데, 그게 사실이라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구나. 친구를 찾기 위해 낮에 깨어나서 돌아다니는 고슴도치가 있다는 소리는 내 평생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고습도치들은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가족끼리도 함께 살지 않는데 친구를 찾아 헤매다니, 게다가 밤에 돌아다니는 동물이라 햇살 아래에서는 눈이 부셔 따가울 텐데도 참고 다니다니, 넌 정말 이상한 고슴도치구나.”


    토포 할머니는 기지개를 켜며 믿기 힘들다는 듯 말했습니다.


    “네가 친구를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숲속 전체에 퍼졌단다. 그러니 이 근처 숲속에 사는 고슴도치들도 그 소문을 들었을 게다. 그중 너와 친구가 되려는 고슴도치가 널 찾아올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 마라.”


    며칠 뒤, 토포 할머니의 말대로 멋있고 늠름한 남자 고슴도치 한 마리가 아리를 찾아왔습니다.

    “내 이름은 제이야.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서투른 이별

    “아이고, 못 보던 사이에 아기를 가졌구먼.”


    토포 할머니가 아리의 배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리는 깜짝 놀라서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배가 볼록해졌습니다. 아기가 생긴 사실에 아리는 너무 기뻐서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아리는 혹시나 아기가 다칠까 봐 조심스레 배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리고 한 발짝 한 발짝 살금살금 내딛으면서 둥지로 향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제이에게 아기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아기 소식을 들으면 제이도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이는 우리가 아기를 가진 게 기쁘지 않아?”


    제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웃음이 사라진 제이의 얼굴이 낯설고 무섭습니다. 아리는 배를 감싸 안으며 둥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너무 서럽고 속상해서 눈물이 저절로 나왔지요. 하지만 제이는 아리를 위로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리는 한참을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아리는 이별에 서툴렀습니다. 한참 후,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에 아리는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제이가 돌아온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이가 아니었습니다.


    “아이고,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아리야, 그만 일어나. 제이가 숲을 떠난다고 하더구나. 내가 진즉에 말했잖아. 고슴도치는 혼자 사는 동물이라고. 제이를 너무 사랑하지 말라고. 언젠가는 제이가 떠날 거라고 했잖아. 자, 일어나 봐. 내가 애벌레를 몇 마리 갈아 왔으니 먹고 힘을 내.”



    아기 고슴도치, 모다

    “도와주세요. 아야, 도와주세요. 아악!”


    아리는 너무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렀습니다. 숲속이 아리의 비명으로 흔들렸습니다.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느티나무 밑 둥지에서 자고 있던 고라니 네디였습니다.


    아리는 너무 아파서 데굴데굴 바닥을 굴러다녔습니다.


    “뭐야? 벌써 아기가 나오는 거야?”


    네디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도와줘. 너무 아파. 도와줘.”


    아리는 울면서 네디에게 손을 내밀었지요.


    “하지만 나는 아기를 낳아 본 적이 없어.”


    네디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아리의 주위를 뱅뱅 돌기만 했습니다.


    “아가야, 네 이름은 모다란다. 모다야. 어여쁜 모다야. 나는 너의 엄마란다.”


    아리는 모다의 가시털을 쓸어주며 소곤거렸습니다. 모다는 아직 어려서 가시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보송보송하고 가느다란 털을 쓰다듬는 느낌이지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매끄러운 가시털의 결을 따라 쓰다듬어주자 모다가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었습니다. 그 웃음에 아리는 갑자기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납니다. 아리는 너무 기쁜 순간에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모다는 아직 눈을 뜨지 못했지만 아리의 품을 찾아 파고들었습니다. 그 순간, 아리는 모다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쯧쯧, 잘 먹어야 젖도 많이 나오는 법인데, 먹이 사냥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아기만 껴안고 있으니 큰일이다. 사냥은 언제쯤 다시 나갈 거야?”


    “모르겠어요. 모다가 아직 눈도 못 떴는데 어떻게 두고 나가요?


    도저히 모다를 혼자 놔두고 갈 수가 없어요. 제가 없는 사이에 늑대나 부엉이가 올까 봐 걱정이 돼서요. 아직 가시가 단단해지지 않았거든요. 너무 보들보들해요. 한 번 쓰다듬어 보실래요?”


    아리는 모다의 가시를 결대로 빗겨 주며 말했습니다. 토포 할머니는 모다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깜짝 놀라 손을 뗐습니다.


    “뭐야? 이렇게 가시가 날카로운데 부드럽다니. 쯧쯧. 그러니 다들 바보엄마 고슴도치라고 놀리잖아. 조심해서 빗겨. 그러다 가시에 찔리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요. 좀 찔리면 어때요? 이렇게 빗질을 자주 해줘야 가시털에 윤기가 흐르거든요. 보세요. 가시털이 반짝반짝거리죠?”



    모다의 첫사랑

    “많이 아프지? 걸을 수 있겠어?”


    남자 고슴도치는 발목의 상처를 살펴보며 물었습니다. 씩씩하고 늠름한데 다정하기까지 하다니. 모다는 이제까지 바로 이런 남자 고슴도치를 기다려왔습니다. 드디어 이상형을 만났다는 기쁨에 상처도 별로 아프지 않았습니다.


    “내 이름은 유진이야. 아주 먼 북쪽 숲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은 혼자 여행 중이야.”


    남자 고슴도치가 먼저 손을 내밀며 소개를 했습니다.


    “내 이름은 모다야. 구해줘서 고마워. 나는 바로 옆 숲에 살아.”


    “아! 네가 숲속 친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바로 그 고슴도치구나?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예쁘다.”



    헤어질 결심

    조용한 둥지에 혼자 멍하니 있을 때면 모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요. 모다는 엄마가 이떻게 지내는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엄마에게 전부인 모다인데, 모다에게 엄마는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오늘도 모다와 유진이는 헤어지기 싫은 듯 둥지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모다는 둥지 안에 들어와서도 엄마의 얼굴은 제대로 쳐다보지고 않고 곧바로 잠들었습니다.


    엄마는 잠든 모다의 곁에 앉아 한참을 모다의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행복한 꿈을 꾸는지 모다가 배시시 웃었습니다. 그 웃음에 서운했던 마음이 휙 날아갔습니다.


    엄마는 모다의 잠든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모다와 유진이가 결혼한 뒤 멀리 떠날까 봐 무섭고 불안했습니다. 아직은 모다와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요. 오늘도 엄마는 모다가 가끔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잠들었습니다.


    “엄마! 엄마!”


    모다가 둥지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엄마가 깜짝 놀라서 뛰어나갑니다. 유진이와 모다가 서로 팔짱을 낀 채 엄마를 맞았습니다. 모다의 품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안겨 있습니다.


    “엄마, 유진이가 나한테 청혼했어요.”


    너무 기뻐서인지 모다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습니다.


    “유진이와 결혼한 뒤에 함께 여행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우리는 남쪽 땅끝마을까지 갈 거예요. 남쪽 땅끝마을은 따뜻해서 먹을 것도 풍족하고 겨울잠도 잘 필요가 없대요. 우리는 거기에서 자리 잡고 살 거예요. 예쁘고 착한 아가도 많이 낳을 거예요. 드디어 내 꿈이 이루어졌어요.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아요.”


    모다의 꿈속에 엄마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깊은 포옹

    아리와 모다는 단 한 번도 서로를 껴안아 본 적이 없습니다. 등의 가시들이 서로를 찌르니까요. 그래도 모다가 어렸을 때는 종종 가시가 없는 배 위에 모다를 올려놓고는 했습니다. 그럴 때면 모다는 어김없이 엄마의 배에 얼굴을 문지르며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따뜻하고 간질간질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모다를 배 위에 올려놓은 채 잠든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다의 덩치가 커지고 나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저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을까 겁을 내면서 거리를 두었으니까요.


    아리는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모다의 품 안에 안겨보고 싶었습니다. 가시에 찔려 상처 입고 피가 나도 좋으니 단 한 번만이라도 모다를 꽉 껴안아 보고 싶었습니다.



    단단한 가시

    단 한 번만이라도 모다를 껴안아보고 싶다는 소원이 너무 간절해서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참을 울던 엄마의 머릿속에 갑자기 번쩍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내 가시를 모두 뽑으면 돼! 모다만 가시에 찔리지 않으면 되니까.”


    그래서 엄마는 밤새도록 자기 몸의 가시를 뽑았습니다. 가시를 뽑을 때마다 너무 아팠지만 꾹 참았습니다. 오히려 모다의 품에 안겨 볼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서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가시를 뽑은 자리가 빨갛게 부어올라 엄마는 마치 멍게처럼 보였습니다.


    “왜 그랬어요? 오늘이 내 결혼식인데, 친구들이 다 놀릴 거예요. 엄마 미워! 엄마가 내 결혼식을 다 망쳤어요.”


    모다는 불같이 화를 내고는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엄마는 모다를 쫓아갔습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가시를 뽑은 자리가 너무나 쓰라렸습니다.



    마지막 작별 인사

    “아가야!”


    엄마가 모다를 애타게 불렀습니다.


    “왜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꾸나.”

    “하지만 가시에 찔리면 아프잖아요.”


    모다가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괜찮아. 엄마는 가시를 다 뽑았으니까 너는 아프지 않을 거야.”

    “그래도 내 가시가 엄마를 찌를 텐데요.”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