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대한 PD     010-5107-0996      kfp_center@naver.com
 
대치동 1% 아이들은 종이신문을 읽습니다
 
지은이 : 김정민, 신찬옥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사
출판일 : 2025년 09월




  •  AI와 스마트폰 시대, 아이들의 뇌가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길들여지면서 문해력의 위기가 현실이 되고 있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긴 글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은 학부모와 교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장면이다. 그 해법을 종이신문과 영자뉴스 읽기에서 찾는다. 


    대치동 1% 아이들은 종이신문을 읽습니다


    스펙과 스크린 사이, 종이신문을 펼치는 아이들
    대치동을 떠올리면 빽빽한 학원가, 영어 유치원, 코딩 캠프, 스펙 경쟁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이 동네의 또 다른 풍경이 있다. 아침마다 거실 바닥에 깔린 종이신문을 스스로 펼쳐 보는 아이들이다. 속도와 효율, 디지털 화면에 익숙한 세대가 느리게 넘겨야 하는 종이 페이지를 읽고 있다는 사실은 질문을 던진다. 왜 하필 신문일까, 그리고 왜 지금일까.

    종이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뉴스를 아는 행위가 아니다. 아이들이 매일 만나는 것은 한 사회가 스스로를 기록하는 원시적인 언어, 활자로 눌러 찍힌 시대의 공기다. 화면 속에서 잘려나간 자극적인 제목 대신, 한 페이지 전체에 배치된 기사들의 관계를 함께 보는 경험이 생긴다. 무엇을 크게 두고, 무엇을 구석에 두었는지, 어떤 사진을 곁들였는지가 모두 조용한 메시지가 된다.

    이러한 독서는 시험 문제를 맞히기 위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세상을 읽는 새로운 감각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디지털에서는 스크롤을 내리며 문장을 흘려보내지만, 종이는 아이를 멈춰 세운다. 문장의 리듬, 단어 선택, 제목과 본문 사이의 밀도에 눈을 대고 읽게 만든다. 이 느린 독서가 아이의 사고 구조에 남기는 흔적은 생각보다 깊다.


    신문이 길러내는 것은 어휘가 아니라 관점이다
    많은 부모가 신문 읽기를 어휘력과 배경지식을 끌어올리는 도구로 바라본다. 물론 시사 용어, 경제 개념, 국제 정세에 대한 기초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종이신문의 진짜 힘은 단어량을 늘리는 데 있지 않고, 관점의 틀을 넓히는 데 있다. 같은 사건을 정치면과 사회면, 경제면이 서로 다르게 서술하는 방식을 아이가 눈치채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신문 읽기의 교육이 시작된다.

    신문은 세상을 하나의 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한쪽 지면에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칼럼이, 다른 지면에는 기업 활동을 더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사설이 나란히 실릴 수 있다. 아이는 그 사이를 오가며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무엇이 더 설득력 있는가, 기사 작성자는 왜 이런 표현을 골랐을까, 내가 이 문제의 당사자라면 어떻게 느꼈을까.

    이 질문의 반복은 시험이 요구하는 정답형 사고와는 다른 방향으로 아이를 끌고 간다. 정답을 찾는 대신, 논리를 따지고, 전제를 의심하고, 감정의 균열을 바라보는 눈이 자란다. 이것이야말로 대학 이후,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장 오래 살아남는 사고력의 바탕이다. 종이신문은 아이를 어른의 세계로 성급히 밀어 넣지 않으면서도, 그 세계의 구조를 미리 엿보게 하는 통로다.


    디지털 세대에게 아날로그 매체가 주는 집중의 힘
    오늘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화면과 함께 자랐다.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면 영상이 바뀌고, 검색창에 몇 글자만 넣어도 알고 싶은 정보가 순식간에 나온다. 이 환경에서 뇌는 짧은 호흡의 자극, 빠른 전환에 익숙해진다. 흥미롭지 않으면 바로 다른 콘텐츠로 갈아타면 된다는 경험이 일상이 된다.

    종이신문은 이런 뇌에게 불친절하다. 확대도 되지 않고, 링크도 없고, 알고리즘이 골라주지도 않는다. 오직 눈과 손, 그리고 조용한 시간만 필요하다. 아이는 한 문장을 끝까지 읽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 사이사이의 빈 공간을 견뎌야 한다. 이 빈 공간이 사실은 사고가 깊어지는 틈이다.

    집중력은 단지 산만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스스로 주의를 어디에 둘지 선택하고, 그 선택을 일정 시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종이신문을 꾸준히 읽는 습관은 이 능력을 체력처럼 길러준다. 짧고 강한 자극에 튀어나가던 마음을 붙들어 두는 시간이 쌓일 때, 아이는 책, 강의, 타인의 이야기에도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된다. 이 집중의 힘은 어느 시험 과목에도 바로 표기되지는 않지만, 모든 과목의 밑바탕이 된다.


    대치동이라는 실험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배우는 수업
    대치동은 흔히 극단적인 경쟁의 상징처럼 소비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교육 실험이 가장 먼저 시도되고, 그 결과가 가장 빨리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종이신문 읽기 역시 그런 실험 중 하나다. 여기서 중요한 주체는 의외로 부모다. 신문을 아이 손에 쥐여주는 순간, 부모는 공부의 설계자에서 대화의 동료로 위치를 바꾸게 된다.

    신문 기사는 해설 없이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치 구조, 경제 용어, 국제 관계를 아이가 한 번에 이해할 리 없다. 부모는 그 공백을 천천히 메우는 해설자가 된다. 설명을 하다 보면, 부모 자신이 세상을 얼마나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혹은 얼마나 편향된 시선으로 세상을 보아왔는지 드러나기도 한다. 종이신문 수업은 그래서 아이만의 공부가 아니라, 부모의 공부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가정은 작은 토론장이 된다. 어느 기사에 동의하는지, 어떤 표현이 불편했는지, 왜 어떤 사건이 반복되는지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게 된다. 성적이나 진학만을 둘러싼 대화보다 훨씬 오래가는 가족의 공통 언어가 생긴다. 아이는 부모를 단순한 생활 관리자가 아니라, 함께 세상을 해석해가는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게 된다.


    입시 도구를 넘어, 시민으로 자라는 첫 걸음
    신문 읽기의 효과를 입시 성과로만 환산하려는 태도는 이 실천의 의미를 급격히 좁혀 버린다. 물론 논술, 인터뷰, 서술형 평가에서 신문 독서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종이신문이 진정으로 겨냥하는 것은 성적표가 아니라, 아이가 장차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채점 기준도, 등급도 없다.

    신문을 통해 아이는 타인의 삶을 반복해서 마주한다. 노조의 파업 기사, 재난 현장의 르포, 국제 분쟁의 뒷면에 있는 난민의 사연까지. 숫자와 통계로만 보이던 사회 문제가 갑자기 얼굴과 목소리를 갖게 된다. 그렇게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접하는 경험이 쌓일 때, 아이 마음 안에는 보이지 않는 윤리적 나침반이 자란다.

    이 나침반은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어떤 도시에서 살든, 어떤 언어로 일하든 그를 따라다닌다. 의사라면 환자를, 기업가라면 소비자를, 공무원이라면 시민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다. 종이신문은 이 나침반의 재료를 매일 조금씩 공급한다. 대치동이라는 좁은 동네의 교육 실천이 결국 한국 사회 전체가 어떤 시민을 원하는지, 어떤 어른을 길러내고자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한 장의 신문이 여는 미래의 공부
    교육의 유행은 빠르게 바뀐다. 코딩, 제2외국어, 인공지능 이해, 메타버스 체험처럼 새로운 키워드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어떤 유행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언어와 사고, 그리고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능력이다. 종이신문을 읽는 아이들은 이 오래가는 축을 다지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길게 보면 가장 튼튼한 기초다.

    신문은 매일 새로 발행되지만, 그 안에 반복되는 주제가 있다. 불평등, 환경, 전쟁, 기술, 노동, 가족, 교육. 아이가 신문을 통해 이 주제들을 여러 해에 걸쳐 지켜보게 될 때, 그는 단편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보게 된다.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지, 변화의 속도와 저항의 힘을 함께 읽어내는 눈이 자란다.

    이런 실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그리고 그 세상을 읽어낼 언어와 도구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있는가. 종이신문은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한 가지 조용한 답일지 모른다. 오늘 아이 앞에 놓인 한 장의 신문이, 내일 그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 메시지
    종이신문 읽기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길러주는 훈련이다.
    디지털에 익숙한 아이일수록 느리고 불편한 종이 읽기를 통해 집중력과 사유의 깊이를 되찾을 수 있다.
    입시 도구를 넘어, 신문은 아이를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가장 아날로그적이면서도 강력한 교육 매체다.


    추천글
    아이의 공부를 성적이 아닌 시야의 넓이로 고민해보고 싶은 부모에게 이 책을 권한다.
    디지털 시대에 왜 여전히 종이신문을 펼쳐야 하는지, 교육적 의미를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내용이다.
    입시와 진로를 넘어 아이를 어떤 어른으로 키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생각의 계기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