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거대한 보조배터리가 되는 날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걱정이 커졌다. 수백만 대...




  • 자동차가 거대한 보조배터리가 되는 날

    - 충전 시간을 조절하고 남는 전기를 되파는 전기차, 전력시장의 새로운 자원으로 떠오르다

    퇴근 후 주차장에 세워진 전기차는 다음 날 아침까지 대부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충전 케이블을 연결하는 순간, 자동차는 단순히 전기를 먹는 기계가 아니라 전기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시 내보낼 수 있는 에너지 자원으로 변한다. 전기차 시장의 다음 경쟁은 더 멀리 달리는 배터리를 넘어, 전기를 언제 사고 어떻게 저장하며 누구에게 되팔 것인가를 둘러싸고 펼쳐진다. 도로 위의 자동차와 도시의 전력망이 하나로 연결되는 새로운 에너지 시장이 주차장에서 열리고 있다.

    [Key Message]
    * 전기차는 이동수단을 넘어 전기를 저장하고 공급하는 분산형 에너지 자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주차된 차량이 전력망과 연결되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배터리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다.

    * 스마트충전의 핵심은 전력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충전 시간을 옮기는 데 있다. 전기가 저렴하거나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시간에 충전하면 운전자의 비용과 전력망의 부담을 함께 낮출 수 있다.

    * 양방향 충전은 자동차 배터리의 전기를 가정과 건물, 전력망으로 다시 보낼 수 있게 한다. 차량 소유자는 전기요금을 지불하는 소비자에서 전력시장에 참여하는 공급자로 확장된다.

    * V2G의 확산은 배터리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터리 보증, 충전 표준, 데이터 보안, 전력 거래와 보상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운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 한국의 아파트와 기업 차량, 버스·물류차량은 스마트충전과 V2G를 적용하기 좋은 기반을 갖추고 있다. 충전기 설치 경쟁을 넘어 여러 차량의 에너지를 통합 운영하는 능력이 새로운 시장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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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전기 숫자 다음에 찾아온 질문
    전기차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가장 불안한 순간은 계기판의 배터리 잔량이 빠르게 줄어드는데 주변에서 충전소가 보이지 않을 때다. 전기차 보급 초기에는 이른바 ‘충전 불안’을 없애는 일이 가장 시급했다. 정부와 자동차 제조사, 충전사업자는 더 많은 충전기를 더 가까운 곳에 설치하는 데 힘을 쏟았다. 주유소처럼 빠르고 편리하게 충전할 수 있어야 사람들이 안심하고 전기차를 선택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국제에너지기구가 2025년 발표한 《Global EV Outlook 2025》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 약 130만 기의 공공 충전기가 새로 설치됐다. 세계의 공공 충전기 수는 500만 기를 넘어섰다.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추가되는 충전 지점은 약 1억5천만 개에 이를 전망이다. 이 가운데 약 3분의 2는 가정용이고, 30%가량은 직장과 상업시설을 비롯한 민간시설에 들어선다. 공공 충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로 예상된다.

    운전자에게 1억5천만 개의 충전 지점은 반가운 소식이다. 전력망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만큼 많은 전력 소비 장치가 새롭게 연결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퇴근한 사람들이 비슷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전기차를 충전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저녁은 조명과 냉난방, 조리기구 사용이 겹쳐 전력 수요가 원래 높은 시간이다. 여기에 수십만 대의 전기차가 동시에 전기를 끌어가면 기존의 저녁 피크가 더 높고 가파르게 솟을 수 있다.

    상황을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좁혀보면 변화가 선명해진다. 처음에는 충전기 몇 대만 설치하면 충분하다. 그러나 전기차가 10대, 50대, 100대로 늘어나면 모든 차량을 동시에 최대 속도로 충전하기 어렵다. 전력을 더 공급하려면 변압기와 배전설비를 증설해야 하고, 공사비와 관리비도 커진다. 충전기 자체보다 전기를 끌어오는 설비가 더 큰 비용과 시간을 요구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렇다고 밤새 주차된 모든 자동차가 케이블을 연결하는 즉시 최대 속도로 충전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후 7시에 들어온 자동차가 다음 날 오전 7시에 출발한다면 주차시간은 12시간이다. 실제 충전에 필요한 시간이 4시간이라면 나머지 8시간은 조정할 수 있다. 자동차마다 출발 시각과 필요한 전력량이 다르므로 충전 순서를 적절히 나누면 전력설비를 무리하게 늘리지 않고도 더 많은 차량을 충전할 수 있다.

    전기차 충전의 중심 과제가 ‘어디에 충전기를 설치할 것인가’에서 ‘언제 어떤 속도로 충전할 것인가’로 이동하는 이유다. 충전기의 숫자가 전기차 시장의 첫 번째 장을 열었다면, 충전 시간을 관리하는 기술은 그다음 장을 연다.


    전기가 쌀 때 깨어나는 자동차
    스마트충전은 차량과 충전기, 전력망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충전 시점과 속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술이다. 운전자가 저녁 7시에 케이블을 꽂더라도 곧바로 충전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 전력 수요가 낮아지고 전기요금이 저렴해지는 밤에 충전을 시작해 다음 날 출발 전까지 필요한 만큼 배터리를 채우면 된다.

    기존의 충전이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받는 방식이라면, 스마트충전은 물값과 사용량, 필요한 시간을 살펴 밸브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시스템과 비슷하다. 운전자는 출발 시각과 원하는 배터리 잔량을 입력한다. 차량은 현재 배터리 상태를 알리고, 전력회사는 시간대별 요금과 전력망 상황을 전달한다. 충전 운영 시스템은 여러 차량의 요구를 종합해 가장 적절한 순서와 속도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전기차는 불편을 참아가며 전력망을 돕는 희생자가 될 필요가 없다. 아침에 필요한 배터리 잔량만 확보된다면 운전자는 충전 시점이 밤 9시인지 새벽 2시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저렴한 시간대의 전기를 사용해 충전비를 아낄 수 있다. 전력회사는 수요가 몰리는 시간을 피하고, 충전사업자는 같은 전력설비로 더 많은 차량을 관리한다.

    스마트충전의 핵심은 소비하는 전기의 양을 무조건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필요한 전력은 채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같은 양의 전기를 전력망이 감당하기 쉬운 시간으로 이동시키는 일이다. 수요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수요의 시간을 바꾸는 기술인 셈이다.

    이 작은 시간 이동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만나면 더 큰 가치를 만든다. 태양광발전이 많은 지역에서는 햇빛이 강한 낮에 전기가 풍부하지만, 해가 지면 발전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낮에 회사나 쇼핑몰 주차장에 세워진 전기차가 태양광 전력을 흡수하면 남는 전기를 버리는 일을 줄일 수 있다. 풍력발전량이 늘어나는 밤에는 가정용 충전기가 전력을 받아 저장한다. 자동차의 배터리가 재생에너지의 들쭉날쭉한 생산량을 받아주는 완충장치가 되는 것이다.

    다만 기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운전자의 행동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력망을 위해 충전 시간을 미뤄달라는 설명만으로는 참여를 끌어내기 어렵다. 시간대별 할인요금이나 자동 충전 보상처럼 눈에 보이는 혜택이 필요하다. 시스템 사용법도 단순해야 한다. 매일 복잡한 전력 가격을 확인할 필요 없이 케이블을 꽂고 출발 시각만 설정하면 가장 저렴한 충전 계획이 자동으로 실행돼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전력시장 전문가가 되는 일이 아니다. 아침에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돼 있고, 이전보다 요금이 줄어들며, 필요할 때 설정을 바꿀 수 있는 서비스다. 스마트충전의 성패는 정교한 알고리즘만큼이나 이러한 평범한 편리함에 달려 있다.

    전기를 되파는 움직이는 발전소
    스마트충전이 전기를 받는 시간을 조절한다면 양방향 충전은 전기의 흐름을 뒤집는다. 일반적인 충전에서는 전력망의 전기가 자동차 배터리로만 이동한다. 양방향 충전이 적용되면 자동차에 저장된 전기를 집과 건물, 전력망으로 다시 보낼 수 있다. 자동차가 전기의 소비자이자 공급자가 되는 변화다.

    전기를 어디에 보내느냐에 따라 이름도 달라진다. 차량이 캠핑용품이나 전자기기에 전력을 공급하면 V2L, 가정에 공급하면 V2H, 건물과 연결되면 V2B, 공공 전력망으로 보내면 V2G라고 부른다. 기술의 사용처는 다르지만 자동차 배터리를 주행 이외의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전기차에는 생각보다 큰 배터리가 들어 있다. 60킬로와트시 용량의 배터리는 일반적인 가정용 저장장치보다 몇 배나 크다. 정전이 발생하면 냉장고와 조명, 통신기기 같은 필수 설비에 상당 시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전기요금이 저렴할 때 충전하고 비싼 시간에는 자동차의 전기를 가정에서 사용해 요금을 낮출 수도 있다. 자동차가 차고에 세워진 비상발전기이자 가정용 배터리가 되는 셈이다.

    V2G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수천 대의 전기차를 하나의 가상발전소처럼 연결해 전력시장에 참여시킨다. 차량 한 대가 내보낼 수 있는 전력은 크지 않지만 여러 대를 묶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력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거나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예상보다 줄었을 때 차량들이 짧은 시간 동안 전기를 공급하면 전력망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자동차가 실제 발전소처럼 계속 전력을 생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전력망은 평소에도 공급과 수요가 거의 실시간으로 일치해야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짧은 순간의 불균형을 메워주는 자원에도 시장 가치가 생긴다. 수많은 차량이 필요한 순간에 조금씩 충전을 줄이거나 전력을 내보내면 대형 발전소 한 곳이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는 2025년 양방향 충전이 가능한 르노 전기차 500대를 카셰어링 서비스에 투입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시민들은 차량을 이동수단으로 이용하고, 주차된 차량은 지역 전력망과 연결된다. 자동차가 도로에서는 공유 모빌리티로, 주차장에서는 에너지 저장장치로 일하는 모델이다. 차량 가동률과 배터리 활용률을 함께 높인다는 점에서 전기차 사업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다.

    중국도 V2G 표준화와 실증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중국이 관련 정책을 통해 2030년까지 10기가와트 규모의 유연성 자원을 확보하는 방향을 추진한다고 분석한다. 전기차 정책의 관심이 판매량과 충전기 숫자를 넘어 전력망 통합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운전자에게도 새로운 수익의 문이 열린다. 자동차는 하루 중 상당 시간을 주차장에서 보낸다. 그동안 멈춰 있는 자동차는 경제적 가치를 만들지 못했지만, 전력시장과 연결되면 대기시간 자체가 자산이 된다. 전기가 풍부하고 저렴할 때 충전하고 수요가 높은 시간에 일부를 판매하면 충전비를 낮추거나 별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 소유자는 기름값이나 전기요금을 지불하기만 하는 소비자에서 에너지 거래에 참여하는 공급자로 이동한다.

    배터리 수명보다 복잡한 시장의 규칙
    자동차로 전기를 되팔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생길 수 있다. “남들이 내 자동차의 배터리를 마음대로 쓰는 것은 아닐까”, “전기를 자주 내보내면 배터리가 빨리 닳지 않을까”, “내일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데 배터리가 비어 있으면 어떻게 하나” 같은 질문이다. 이 우려를 해결하지 못하면 V2G는 흥미로운 시범사업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배터리는 충전과 방전을 거치면서 조금씩 성능이 떨어진다. 다만 양방향 충전이 배터리 수명을 얼마나 단축하는지는 방전 깊이와 빈도, 온도, 충전 속도, 배터리 관리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매번 배터리를 완전히 방전하는 방식과 일정 범위 안에서 소량의 전력만 주고받는 방식은 영향이 같지 않다. 주행 계획과 배터리 상태를 고려해 안전한 범위에서 운용한다면 부담을 낮출 수 있다.

    기술적 관리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책임과 보상의 기준이다. 자동차 제조사의 배터리 보증이 V2G 사용에도 적용되는지 명확해야 한다. 전력망을 위해 배터리를 사용한 만큼 충분한 보상이 지급되는지도 따져야 한다. 전력 판매로 몇천 원을 벌기 위해 고가의 배터리 수명에 대한 불안을 감수하라고 요구해서는 시장이 커지기 어렵다.

    차량 이용권은 언제나 소유자에게 우선돼야 한다. 운전자가 다음 날 오전 7시에 장거리 운전을 계획했다면 시스템은 그 시간까지 필요한 전력을 남겨둬야 한다. 최소 배터리 잔량과 출발 시각, V2G 참여 여부를 사용자가 직접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일정이 생기면 즉시 충전하거나 전력 공급을 중단할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

    기술 표준도 넘어야 할 산이다. 자동차와 충전기, 건물의 에너지관리 시스템, 전력회사, 전력시장 운영자의 플랫폼이 같은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 플러그 규격이 맞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차량의 배터리 상태를 안전하게 전달하고, 충전과 방전 명령을 주고받으며, 거래한 전력량을 정확하게 계량할 수 있어야 한다. 제조사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지역마다 규정이 다르면 서비스 확장은 느려진다.

    정산 방식도 중요하다. 운전자가 전력망으로 보낸 전력량에 대해서만 돈을 받을지, 필요할 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차량을 연결해 둔 대기 능력에도 보상할지 결정해야 한다. 전력 가격이 낮은 지역에서는 단순한 전력 판매만으로 충분한 수익을 얻기 어렵다. 최대수요 절감과 주파수 조정, 비상 예비력처럼 다양한 전력서비스에 참여할 수 있어야 사업성이 높아진다.

    개인정보와 보안 문제도 뒤따른다. 충전 데이터에는 차량의 위치와 이용 시간, 이동 습관, 배터리 상태가 담긴다. 매일 어느 시간에 집을 비우는지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정보다. 수많은 충전기가 해킹돼 동시에 작동하거나 멈춘다면 전력망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 충전기는 주차장의 편의시설인 동시에 외부와 연결된 디지털 전력설비가 된다.

    V2G의 확산을 결정하는 것은 배터리 성능 하나가 아니다. 자동차 제조사와 충전사업자, 전력회사, 시장 운영자, 보험사와 규제기관이 함께 설계하는 규칙이 더 중요하다. 기술은 이미 자동차에서 전기를 꺼낼 수 있는 단계로 향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누구의 배터리를 어떤 조건으로 사용하고, 위험과 수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합의다.

    빠른 충전과 영리한 충전의 차이
    전기차 충전을 둘러싼 경쟁에서는 ‘더 빠르게’라는 구호가 강력하다. 주유에 익숙한 운전자에게 30분의 충전시간도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장거리 이동 경로에서는 초급속 충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충전 시간이 짧을수록 운전자의 불편이 줄고 충전소의 회전율도 높아진다.

    그러나 모든 장소에서 가장 빠른 충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가 밤새 머무는 아파트 주차장이나 하루 종일 세워지는 회사 주차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10시간 동안 주차할 차량을 20분 만에 충전하기 위해 고가의 설비와 막대한 전력을 준비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이동 중에는 빠른 충전이 중요하고, 오래 머무는 곳에서는 영리한 충전이 중요하다.

    전력망도 속도에 따라 다른 부담을 느낀다. 여러 대의 자동차가 초급속 충전을 동시에 시작하면 짧은 시간에 큰 전력 수요가 발생한다. 충전소 이용률이 낮더라도 최대 사용량을 기준으로 변압기와 배전설비를 준비해야 한다. 전력망 연결 공사가 늦어지면 충전기를 설치하고도 충분한 출력을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

    대형 급속충전소에 배터리 저장장치를 함께 설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력 수요가 낮을 때 저장장치에 전기를 채워두고 차량이 몰릴 때 꺼내 쓰면 전력망에서 한꺼번에 끌어오는 전기를 줄일 수 있다. 태양광발전까지 연결하면 충전소는 전기를 소비하기만 하는 시설에서 생산과 저장, 공급을 함께 수행하는 지역 에너지 거점으로 변한다.

    충전사업자의 경쟁 기준도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충전기 수를 늘리는 전략이 중요했다. 앞으로는 전력 가격을 예측하고 여러 차량의 충전 일정을 조정하며, 저장장치와 재생에너지를 통합하는 능력이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 충전사업은 충전기를 설치하는 설비 사업에서 데이터를 활용해 에너지를 운영하는 서비스 사업으로 확장된다.

    자동차 제조사 역시 차를 판매한 뒤 관계가 끝나는 구조에서 벗어난다. 차량의 배터리와 충전 소프트웨어를 통해 전기요금 절감과 비상전력, 전력시장 참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전력회사는 발전소와 송전선만 관리하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의 차고에 있는 배터리까지 연결하는 플랫폼 운영자가 된다. 서로 다른 산업의 경계가 충전 케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무너지고 있다.

    한국의 주차장에서 열리는 에너지 시장
    한국은 스마트충전과 V2G에 유리한 조건과 어려운 조건을 함께 지닌다. 아파트 거주 비중이 높아 개인이 마음대로 충전기를 설치하기 어렵고, 주차공간과 전력 용량을 둘러싼 갈등도 생긴다. 반대로 수십 대에서 수백 대의 차량이 한곳에 모여 장시간 주차하므로 충전 시간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모든 차량이 귀가 직후 충전을 시작하면 아파트의 최대전력이 빠르게 높아진다. 차량별 출발 시각과 필요한 충전량을 반영해 순차적으로 충전하면 기존 전력설비를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전기차가 늘 때마다 변압기를 증설하는 대신 소프트웨어가 충전 순서를 조정하는 것이다. 충전기 대수 못지않게 운영 시스템의 성능이 중요해진다.

    한국 정부는 2025년 전기차 충전시설 관련 예산을 약 6천200억 원 규모로 확대했다. 급속충전 인프라에 상당한 재원이 투입되는 한편, 완속 부문에서는 스마트충전 기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대중화 단계로 들어설수록 설치한 충전기의 숫자만 세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제 이용률과 고장률, 전력망 연계 능력, 피크시간의 부하관리 효과까지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초기 V2G 시장은 개인 승용차보다 운행 일정이 일정한 차량군에서 먼저 열릴 가능성이 크다. 시내버스와 통학버스, 택배차량, 렌터카, 법인차량은 이동 시간과 주차 장소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여러 차량을 한 사업자가 관리하므로 계약과 정산도 수월하다. 밤이나 특정 시간에 차고지로 돌아오는 전기버스와 물류차량은 거대한 분산형 저장장치가 될 수 있다.

    기업의 업무용 전기차도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 낮에는 임직원의 이동을 지원하고, 주차 중에는 건물의 에너지 비용을 낮추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기요금이 저렴할 때 차량을 충전하고 최대수요가 발생하는 시간에 건물의 전력 사용을 보조하면 요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태양광발전 설비가 있는 사업장은 낮에 생산한 전기를 차량에 저장해 다른 시간에 사용할 수도 있다.

    이 시장을 키우려면 자동차 소유자가 실제로 얻는 이익이 분명해야 한다. 출발할 때 배터리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배터리 보증이 유지된다는 확신, 참여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복잡한 전력시장 용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버튼 몇 번으로 참여하고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편익은 플랫폼이 가져가고 불편과 위험은 운전자가 떠안는 구조로는 오래가기 어렵다.

    전기차 충전의 전력시장 통합은 새로운 산업 지도를 그린다. 자동차 제조사는 에너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충전사업자는 전력 수요를 관리하며, 전력회사는 도로 위의 배터리와 연결된다. 건물 관리자는 주차장을 단순한 차량 보관 공간이 아니라 에너지를 저장하고 거래하는 장소로 바라보게 된다.

    전기차가 전력망의 부담이 될지, 전력망을 지탱하는 자원이 될지는 차량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충전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분산하고,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의 가치를 얼마나 공정하게 거래하느냐가 방향을 가른다. 오늘 밤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는 조용히 다음 날의 이동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 자동차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순간, 도시는 지금까지 갖지 못했던 거대한 이동식 발전소를 얻게 된다.

    Reference
    International Energy Agency, May 2025, Global EV Outlook 2025: Expanding Sales in Diverse Markets
    International Energy Agency, May 2025, Electric Vehicle Charging, Global EV Outlook 2025
    European Commission, March 2025, Industrial Action Plan for the European Automotive Sector
    Ravi Raj Shrestha et al., August 2025, Smart Charging Impact Analysis Using Clustering Methods and Real-World Distribution Feeders
    Reuters, June 2025, Dutch Car Sharing Firm Adds Renault EVs Capable of Powering Local Grid